농오리산성 고구려 투구에 대한 잡설

 예전에 가죽찰갑 보완작업을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자료 뒤지다. 조선유적유물도감에서 농오리산성에서 출토된 고구려 투구를 보게되었습니다. 북한문화재 자료관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게시물은 본래 찰갑 보완작업이 끝나면 올리려고 작성하던 도중에 그만둔 이후로 잊어버리고 있다가 며칠전 다시 작성을 시작했습니다.;;;;

투구에 대한설명(+북한에서 만든 재현품 투구들) http://north.nricp.go.kr/nrth/kor/cul/cul_view.jsp?cpsno=1365 
농오리산성은 이러한 유적입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3955 

농오리산성에서 출토된 이 고구려 투구는 여러개의 철판 부품을 리벳으로 이어만든 투구로써 후대 동아시아 곳곳에서 쓰이는 형태의 투구들과 유사한 구조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후대의 남국국시대(발해,신라)~조선시대, 티벳, 몽골, 명, 청의 투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장해놓은 사진 자료들 중 발해의 사찰유적인 오매리절골 유적에서 발굴한 투구의 외곽선이 이 투구와 비슷한 것 같아 비교해 봤습니다. 투구 최상단 부분이 다르긴 하지만 복원에 참고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며칠전 일본 3D재현사이트(예비역 자위대 부사관 아저씨가 제작/운영하는 사이트)에서 투구사진들을 돌아보다가 비슷한 투구가 일본에서도 쓰인 것을 발견했습니다.(시기도 6세기 후반)
 사이트에는 竪矧板鋲留冑수신판병류주(세로판 두정=리벳 연결 투구)라는 이름으로 올라와 있습니다. 群馬県綿貫観音山古墳군마현 면만관음산고분(군마현 와타누키간호토야마 고분)에서 출토됐습니다.
 두 투구의 차이점 이라면 농오리산성 유물이 복발부분이 더 넓고, 전체적으로 더 둥근형태이며, 코가리개 부분이 존재하는 점이 다릅니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고 특별한 분류명도 없는(별거없이 그냥 철제투구=_=)이 투구와 매우 유사한 재현품이 존재합니다. 상당히 유명한 고구려 갑주 전시물로 알려지고 전쟁기념관에서 전시중인 이 갑주모형의 투구입니다.

 사실, 이 모형... 고증이 애매하고 거시기한 부분이 있는 전시물 입니다. 
 투구는 6-7세기로 추정되는 농오리산성 출토품을 참고했고, 
갑옷(신갑부분)은 1세기경 노하심유적 부여 찰갑 비슷하고(실제로는 장군총 출토금동소찰인데 신갑용이 아니라 상박갑 부분으로 추정됩니다.), 거기에 요찰부분이 휘어있지 않고 평평합니다(잘록한 허리라인은 삼국시대 동환식찰갑의 생명!). 
경갑(목가리개)부분은 엮기기법이 이상하고, 
대퇴갑(바지)부분은 4세기~5세기 유물과 비슷하긴 한데 연결방식이 내중식이고(외중식이 근접전에서 더 유리)끈 연결용 투공도 실제 발굴된 유물들과 차이가 있습니다...

  마치. 미군을 가지고 설명하면, 현용 미군 방탄헬멧에 17세기 영국 식민지시절 판금흉갑을 입고 2차대전시기 미육군 각반을 차고 다니는 것 입니다.(엉터리 고증으로 인한 분노가 느껴지는 표정입니다-_-;;;;) 

 물론, 이 모형이 만들어진 시기(1993년)의 안습했던 국내의 삼국시대 찰갑연구 상황을 고려하면 자료가 부족해 벽화자료(삼실총)와 극소수의 찰갑편만 가지고 만든 것을 알기에 납득은 갑니다.
 
 그렇지만, 이 갑옷 제작이후인 90년대 중반~ 2011년 까지 엄청난 양의 발굴 성과들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2000년대 이후~현재까지 버젓이 전시하는 것은 잘못 되었다 봅니다(90년대에 일본 동환식괘갑자료를 참고했다면 그시절에도 원형에 가깝게 제작이 가능하긴 했을 것 이지만, 연구성과가 별로 없던때라 한반도-만주와 일본열도의 동환식 찰갑이 같은 종류라는 확신이 없었을 것 입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에 제대로 된 형태의 중장기병/삼국시대 찰갑 전시물이 국립중앙박물관이나 복천박물관 등지에 전시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한국을 방문했던 외국인들이 이 모형갑옷을 고구려의 대표갑옷으로 알고 있다는 것 입니다. 이상하게도 이것보다 고증이 잘된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물이나 부산박물관복천동분관 전시물보다 유명합니다(전시기간 차이떄문으로 추정됩니다.).

 결론적으로, 4~6세기초 중장기병 모형은 실제 유물(경주쪽샘지구 유물이나 연천 무등리2보루 유물)을 바탕으로 새롭게 만든 재현품을 배치하고, 
 투구는 쇄자갑,찰갑(7세기 전후로 고려-조선시대 찰갑과 비슷한 형태로 변했더군요-당나라 벽화,발해,신라의 찰갑편 유물 등을 통해 추정복원 가능, +양당개형 찰갑=류성룡선생유물,수안동출토품)과 함께 7세기(삼국시대 말)중반을 배경으로 하는 고구려무장 재현용으로(명광개는 실물유물이 없어 함부로 추가하긴 부담이 크니 제외합니다), 
 찰갑부분은 개조를 거쳐 종장판투구와 함께 1세기 부여무장 재현용으로 고쳐서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동북공정을 까려면 부여사도 강조해야 제맛!)

*고증에 맞지않는 전시물들은 예산문제도 있으니 당장 바꾸진 못 하더라도 순차적으로 조금씩 교체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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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농오리산성 고구려투구, 오매리절골터 발해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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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신판병류주
-3D 공방(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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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뒤섞인 짬뽕고증의 안좋은 예-미군
- 미치헬멧 http://www.benscore.com/Engarde-MICH-Helmet-IIIA-zwart-kogelwerend-p-26679.html

-17세기 경기병 흉갑 http://sbgswordforum.proboards.com/index.cgi?board=otherweaponreviews&action=display&thread=15747&page=2

-2차세계대전시기 각반+전투화 http://s176595924.onlinehome.us/teamblackjack/phpBB2/viewtopic.php?t=3915&sid=dfdb75e20d701a09063a62fac409c4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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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미늘갑주재현품-전쟁기념관
 -전쟁기념관
 -이뮤지엄 http://www.emuseum.go.kr/relic.do?action=view_d&mcwebmno=74505


덧글

  • 모에시아 총독 2012/01/17 09:01 #

    그랬었군요. 저는 저게 얼추 맞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럽-동로마계 갑옷은 시대구분 대충 하면서도 고구려 갑옷은 잘 모르다보니 저번에 전쟁기념관 가서도 내중식이라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지 저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 무갑 2012/01/17 09:18 #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하는 서적이 필요하긴 합니다. 수준급인 발굴/연구성과에 비해 알려진게 너무 적죠.
  • TheodoricTheGreat 2012/01/17 12:48 #

    보통 벽화 등에 비슷한 물건이 그려져 있지 않은지?
  • 무갑 2012/01/17 13:31 #

    고구려 벽화중에 인물화 위주로 그려진 고분들의 연대가 대부분 4~6세기경이라 종장판주나 소찰주만 나타나고 농오리산성 유물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6세기 중후반~7세기에는 벽화그림이 사신도같은 종류로 바뀐때라 농오리산성투구같은 종류는 벽화에 나오지 않습니다.
  • 초효 2012/01/17 20:06 #

    근데 저 미리견 병사 엉터리 고증 조합도 병신같지만 멋져보이는 이유가 뭘까요?(먼산)
  • 무갑 2012/01/17 20:17 #

    저도 다시보니 수긍이 갑니다. 아마도 전부 검정-갈색 계통으로 통일하여 색상조합(깔맞춤)이 잘되서 그렇습니다.;;;
    "미치헬멧 사진을 픽셀위장포씌운걸로 했었으면 지금보다 X신같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번동아제 2012/01/17 22:22 #

    중국에서 최근에 나온 어떤 갑옷 관련 단행본에는 저 재현(?) 모형 사진을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전형적인 철갑"이라고 설명까지 달아서 책에 실어 놓았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재현한 고구려 갑옷 모형이라는 설명은 전혀 없습니다. 웃을 일일까요. 울어야할 일일까요.

    무갑님께서 잘 설명하셨듯이 새삼 저 갑옷에 대해 논평하기도 그런 것이 저 재현 모형을 처음 제작한 것이 1990년대 초반인데, 저 때까지 우리나라에서 삼국시대 찰갑을 주제로 한 학위논문은 커녕 학술지 논문 1편도 나오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일부 의상학자들이 고구려 고분 벽화를 토대로 삼국시대 갑옷에 대해 언급하던 시절이었죠.

    지금은 의상학자 대신 고고학자들이 대거 삼국시대 찰갑 연구에 가담하기 시작하면서, 연구 수준이 많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고구려 찰갑을 그림 형태로 복원안을 제시한 학자는 단 1명도 없습니다. 고구려 찰갑을 메인 주제로 한 논문은 송계현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에 쓴 논문하나하고, 최근에 석사 논문 하나 놓은 것 뿐이죠. 이제 유적별 갑찰 분류를 하고 있는 마당에 고구려 찰갑 전체 복원 모형은 아직 기대를 할 시기가 아닐듯...

    복천동쪽 복원 모형이란 것도 한반도 중남부 스타일의 종장판주에 경갑 실물 유물 복원안을 결합하고 거기에 신갑 아래 부분은 일본식 게이코 복원안을 결합한 것이라 최근에 폭발적으로 진전되고 있는 찰갑 연구가 학자들간의 치열한 논쟁을 통해 정리가 되면 좀 더 세밀하게 복원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 무갑 2012/01/17 23:47 #

    오류가 오류를 낳는군요. 그 단행본에 사극 제작관련 중국인들이 낚여서 파닥거리다가 중국 사극에서 저 재현품처럼 생긴 갑옷을 보겠네요^^;;;;; 실제로 이런일이 발생하면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몇몇은 제 글을 근거로'대륙의 고증'이라며 '베낄려면 제대로 된거나 베끼던가 낄낄낄...'식으로 비웃는 사람도 나올거 같네요;;;;

    따지고 보면, 일본 괘갑이랑 비슷했다는 사실때문에 벽화자료, 찰갑편 조각 약간만 가지고 정확한 물증(완형유물)없이 만드는 것도 학술적 입장에서는 잘못된 일이네요...
    어쩄든 학술적인 성과들도 점점 쌓여가고 있고, 쪽샘지구 유물과 무등리2보루 유물같은 완형복원이 가능해 보이는 유물의 발굴성과도 정리되면 지금보다는 실제에 가까워 질 것 같습니다.

    이제 걸음마하는데 왜 빨리 못뛰냐고 회초리들고 혼내는게 이상한건데... 저같은 매니아는 마음만 급한게 문제네요-_-;;;;
  • 번동아제 2012/01/17 23:59 #

    . 말씀처럼 한국 전기관의 복원 모형이 중국 사극에 등장해서 엉뚱하고 생뚱맞은 원류 논쟁이 벌어질수도 있겠네요. -_-

    2. 사실 가능성이 제일 높은 것은 쪽샘지구쪽인 것 같은데 신갑으로 착각했던 대퇴갑이야 워낙 반듯하게 놓여져서 복원 가능성이 높을듯한데...발굴 당시 인지하지 못하고 뒤늦게 확인한 신갑쪽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인지 궁금합니다. 대퇴갑만큼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은데 어떨지....

    3. 무갑님의 복원 모형 제작 시도는 여러가지 엮기 기법의 실효성을 검증할수 있는 직접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의미있는 시도였고, 다른 분도 아니고 그 정도 노력을 한 무갑님이라면 연구자들에게 "더 빨리 뛰어라"고 회초리를 들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 무갑 2012/01/19 01:49 #

    다른 부분은 모르겠는데 투구쪽은 저들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나 보네요. 출토 유물중에 비슷한게 있나봅니다. http://www.madefuns.com/bbs/viewthread.php?action=printable&tid=162
    투구가 같으니까 갑옷도 같은 것 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래도 전쟁기념관을 빼놓고 이야기 한 것을 봐서는 그냥 넣은거 같습니다.
    근데 중국 사이트들 뒤지다 댓글보니 빵즈(봉자=고려봉자=한국인 비하표현)가 날조했다.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민족이 세운 지방정권이다라는 소리를 운영자가 지껄이네요..;;;
  • 2012/09/09 21:0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9/09 23:2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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