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갑을 고쳐야겠네요.

투구내피만 만들어놓고 정작 투구는 손놓고 있습니다... 올해 제작계획은 이래저래 물거품 입니다. 뭐 계획이란게 그렇지만요;;;;

 

 작년 9월~ 올해 1월까지 당시 구할 수 있는 각종 자료를 동원해 만든 찰갑이긴 하지만,

지금 본다면 상당히 부족한 점이 많이 보입니다. 신중치 못하고 경솔하게 덤벼들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1. 크기문제

 사실 시대적으로 가장 가까운시기의 가죽찰갑인 유성룡 찰갑의 크기는 3 .5X 10.7 , 2.8 X 7, 1.7 X 4.8 (cm)의 세 종류, 부산 동래읍성 유적에서 발견된 찰갑은 1.8 ~ 2 X 8~ 9 입니다.

  그러나 제가 만든 찰갑의 크기는 2.5 X 9 , 2.5 X 5... 크기를 참고하는데 사용한 사료가 미륵사지출토 고려시대 철제찰갑편이기 때문입니다. 실제크기는 2.4X 9 , 2.3 X 5인데 편의상 크기를 약간 바꿨습니다.

 갑옷을 제작할 당시 유성룡 찰갑의 크기를 알 수 있는 한국의갑주 라는 책을 모르고 있었던 상태라 부위별 갑찰편의 크기가 다른 미륵사지 찰갑편의 크기를 참고하여 만든 것이 문제입니다.

2. 상하중첩문제

 갑찰편의 상하 중첩이 내중식(위쪽 찰이 앞)인지 외중식(아랫쪽 찰이 앞)인지 하는 문제도 조금은 난해한 문제입니다. 유성룡 찰갑의 경우는 외중식, 동래읍성출토 찰갑의 경우 내중식의 중첩형태를 보여줍니다. 게다가 국조오례의에 나오는 찰갑의 모습이 내중인지 외중식인지 헷갈리게 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무기와 갑옷(저자 민승기)에서 예를 들고 있는 조선시대 찰갑의 예와 전쟁기념관의 수은갑 추정복원품의 경우 내중식 배열을 하고 있었고, 마침 검색중에 발견한 동래읍성찰갑의 배열이 내중식인것을 보고 국조오례의에 나온 갑옷의 배열을 내중식으로 성급히 확신하고 내중식으로 결정한 점과 비교용 해외자료(몽골,티벳,청)의 찰갑들이 외중식인 점이 걸립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외중식 같기도하고 내중식 같기도 하고 헷갈리는 그림입니다. 윗갑찰이 아랫갑찰 위로 올라온듯도 하고 아랫찰이 위로 올라온듯 하기도하고.... 어떻게보면 가운데 구멍에서 아랫갑찰에 연결되는 외중식 가죽끈엮기법을 표현한 것 같기도하고... 확실히 그림자료는 실측도 같은 것들을 제외하면 상세한 부분을 얼버무려 버리는 경우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편이라 함부로 확신하는 것은 위험한 것을 배울수 있었습니다..;;;

 

3. 기타

 합임부의 연결을 옷고름 형태로 하려다 옷고름 만들기 귀찮아 그냥 단추매듭으로 만든것도 조금은 걸립니다.  연결부(합임, 트임)의 소재의 경우 금속제 단추, 옷고름 등 다양한 소재가 쓰였음에도 다양한 검토를 해보지 않은 점이 걸립니다. 동시대의 다른 갑주들의 합임, 트임용 단추나 매듭 등을 더 자세히 비교해보고 다시 만들어 붙여야겠습니다.

 

조선시대 찰갑유물의 수(미륵사지 찰갑편을 추가해도 3종류에 불과합니다.)가 너무 적어 비교가 거의 불가능한 점이 난감합니다.

 차라리 사료가 많은편인 두정갑 종류를 만드는 것이 나았다는 생각입니다. 지금와서보니 참 그냥 앞뒤없이 그냥 뛰어들었다는 그런 생각만 듭니다.

 이렇게 앞뒤없이 뛰어들어 날림으로 만들어놓고 마치 대단한 놈인 것 처럼 자랑질이나 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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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갑의 무기와 갑옷만들기 : 찰갑 보완하기1-1. 해체와 자료준비 2010-07-19 09:42:38 #

    ... 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러 게시물에서 소개된 갑옷이고, 제가 그나마 넷상에서 알려지는 계기가 된 찰갑이지만, 예전글( http://kyb0417.egloos.com/4310392 )에서 이야기 한 것 처럼 제작당시 자료부족(그 당시 한국의 갑주만 알았어도;;;) 때문에 날림으로 제작된 점 때문에 개조를 염두 ... more

덧글

  • 애프터스쿨 2009/04/17 22:11 #

    어이쿠...모두 분해하셔서 처음부터 다시 만드실 생각이신가요...? 정말 저 상하중첩문제는 참 햇갈립니다... 중국쪽의 찰갑과 한반도 고대 찰갑들도 모두 아래 갑찰이 위 갑찰 위로 올라온 형태인데, 부산 동래성 출토 찰갑과 전쟁기념관 복원품은 윗 갑찰이 아랫갑찰을 덮고 있는 형태라서 말입니다..흠.. 저 그림만 가지고는 알 수가 없지만, 조선의 경우에는 윗갑찰이 아랫갑찰을 덮는 형태가 아닌가 싶습니다..(아님 말구요=3=3=3)
  • 졸라맨K 2009/04/18 00:08 #

    우리나라 고려~조선시대 찰갑유물 사진을 보면, 유성룡찰갑의 경우는 외중식이고 동래읍성 찰갑의 경우는 내중식입니다. 고려시대 찰갑편은 부식이 심해 확신은 못하지만, 제가가진 작은사이즈의 사진으로 볼때 외중식일 가능성도 있어보입니다.
    그리고 제가 가진 티벳, 몽골, 청나라의 찰갑들 사진은 외중식 입니다.
    제 생각에는 둘다 쓰였을 것 같습니다. 어느분 말대로 갑옷 만드는 장인마다 다를 가능성도 있을것 같구요.;;;;
    다음에 만들때는 좀더 자료조사를 충실히 해야겠습니다.
  • 번동아제 2009/04/18 00:45 #

    그동안 크게 관심을 두지 않던 명나라시대 찰갑 출토 사례를 좀 확인해 봤는데

    출토된 유물 중에 명나라 찰갑도 두 건이 있더군요.

    1950년대 명 정릉에서 발굴 중에 나온 것도 외중식이고, 2003년에 광조우에서 출토된 명나라 갑옷도 외중식이네요.
  • 졸라맨K 2009/04/18 01:15 #

    한족 왕조에게도 버림받은 내중식인가요..?
    그나저나 동래읍성 찰갑은 참 뭐라할지 모르겠네요. 발견되는 유물들은 거의 대부분이 외중식인데 혼자 떡하니 내중식이군요..
    미륵사지 찰갑은 동래읍성 찰갑보다도 사진자료 구하기가 힘드네요. 미륵사지박물관 홈피에서 보려니 계속 먹통입니다.
    역시나 학예실에 전화해서 양해를 구하고 발굴당시 사진이나 실측자료라도 얻을 방법을 구해야겠습니다.
  • 번동아제 2009/04/18 20:32 #

    미륵사지 1차 보고서는 구하기가 좀 힘드네요. 도서관에 가야할듯...
  • 네비아찌 2009/04/18 10:40 #

    동래읍성 찰갑이 혹시 "싸제" 아니었을련지요.
  • 번동아제 2009/04/18 10:59 #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삼국시대 때 이미 내중식에서 보다 발전된 양식으로 간주되는 외중식으로 발전했다는 것이 고고학계의 통설이었습니다만 조선시대 때 실물로 내중식이 나와 버린 것이 문제인데...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관영 무기 장인이 만들었든 아니면 개인이 조달한 갑옷이든... 일단 남아있는 조선 전기 실물 찰갑이 두 건 밖에 없다보니 장담하기 힘든 영역이죠. 어느 규격화된 흐름이 보이고 하나가 그 흐름에서 벗어나 돌출된다면 이건 예외다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규격화된 흐름을 아직 잡지 못한 상황이니까요.

  • 졸라맨K 2009/04/18 13:34 #

    조선시대 무기구/갑주의 마련이 원칙적으로 개인구입하는 것이라. 지급받더라도 봉급에서 제하거나 달마다 얼마씩 내서 구입하고,
    실록에 보면 개인구입 갑주라도 해당 관청에서 갑주견본과 비교해 수준미달일 경우 처벌을 받는 경우가 있으니 현대 한국군의 싸제 개념과는 다른것 같네요.
  • 번동아제 2009/04/18 14:33 #

    임란이전 조선 전기에 국가 단위에서 갑옷을 대규모로 제조한 것이 기록상 뚜렷이 나타나는 것은 연산-중종대의 비융사에서 제조한 것이 유일한 실례인데...이때 제조한 것도 갑사 등에게 녹봉에서 공제하는 방식으로 판매하고 있죠. 가격 정해서 아예 민간에 판매한 기록도 있구요.

    지방별로 연간 갑주 생산량이 할당된 기록이 있으니 군기시나 비융사를 갑옷의 유일한 공급처라고 생각할수는 없을 것이고, 지방 관아에 소속된 관영 장인도 존재했을 겁니다. 여기에 추가해 순수 민간 장인도 존재했느냐의 문제는 직역 차원에서 따져봐야하니 뭐라고 아직까지 장담하긴 힘든 영역일듯하고...

    과연 이런 장인들 사이에 어느 정도의 Variation 차이가 발생하느냐의 문제인데, 구체적인 기준 치수가 존재하는 화약무기조차 제멋대로 제조하는 것을 보면 전근대의 규격화라는 것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고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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